이런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선량한 시민들은 '이런 말도 안되는 얘기를 왜 하지, 나처럼 법도 잘 지키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 안주고 사는 사람에게 구속영장이라니!!!'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 질문을 한 자에게 무슨 의도를 갖고 물어본 것이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죠. 얼뜨기 변호사가 누구 겁주려고 하냐구요…
그렇습니다. '선량한' 시민들에게 '구속영장 청구'라는 말은 스마트폰 속의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사건입니다. 적어도 나와 내 가족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일이지요. 다만, 현재 우리나라 사회에서 그 '선량한'이라는 수식어를 과연 누가 규정하는 것인지 한번 곱씹어 볼 필요는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적어도 형사사법의 절차적인 측면에서 '선량한' 사람인지 '불량한' 사람인지 여부는 구속영장을 청구할 권한을 가진 수사기관이 1차적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 후 법원이 그 중 덜 '불량한' 사람을 가려서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뉴스에서 한번씩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고 보도되는 정치인, 기업인, 인플루언서 등 나름 우리 사회에서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들 중 과연 자기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될 수도 있다고 사전에 예상했던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횡령·배임·자본시장법위반 등 경제범죄, 뇌물·정치자금법위반 등 부패범죄, 중대재해처벌법위반·공정거래법위반 등 최근 구속영장 청구율이 높은 범죄를 살펴보면, 그렇게 수사를 받고 구속의 위기까지 간다고 스스로 예상했던 사람은 매우 적어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런 분들일수록 처음에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을 때는 당연히 기각된다는 생각에 의연하다가도, 결과적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수감되면 하루가 다르게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를 드러내곤 합니다.
그런 이유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알리지 않은 채 전전긍긍하면서 조용히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가족들이 충격을 받을까 봐 알리지 않았습니다', '회사 사람들은 아무도 이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등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진술서나 탄원서를 받아서 제출하면 유리한 사건임에도 누구에게 부탁을 해야할 지 막막한 경우도 한번씩 맞닥뜨리게 됩니다.
아래에서는 꼭 나한테 일어날 일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사업을 하다가 또는 거래에 잘못 관여하는 등으로 인해서 억울하게도 수사기관으로부터 범죄 혐의자로 판단되어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불상사가 발생했을 때 상식적으로 대처함에 필요한 내용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구속사유는 많이들 아시다시피 매우 간단명료합니다. 형사소송법에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거나 (도망하거나)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라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밖의 고려사항으로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우려'가 규정되어 있지만, 이 내용은 말 그대로 고려사항이어서 필수적인 구속사유는 아닙니다.
법원에서는 실무상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부분을 '범죄혐의에 대한 소명'이라고 칭하고 '도망', '염려'라는 단어는 '도주', '우려'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으니, 위 구속사유를 유형별로 나누면, '범죄혐의에 대한 소명이 있고 일정한 주거가 없는 경우', '범죄혐의에 대한 소명이 있고 증거인멸 우려가 있는 경우', '범죄혐의에 대한 소명이 있고 (도주하였거나)도주우려가 있는 경우'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중 주거가 부정하거나 실제로 도주를 하는 사례는 많지 않으니(이런 경우는 대체로 구속영장이 발부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구속영장 발부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대부분 '범죄혐의에 대한 소명'과 함께 '증거인멸 또는 도주의 우려'가 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구속의 전제가 되는 가장 중요한 요건은 역시 '범죄혐의에 대한 소명'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로 증거가 있어야 구속영장 발부의 요건이 만족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일반적으로는 체포영장 발부의 요건보다는 그 증명의 정도가 높을 것을 요구하지만 유죄판결의 경우처럼 고도의 증명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설명 또한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더 쉽게 설명하면, 체포영장 발부의 경우에 피해자나 목격자의 일방적인 진술만으로도 소명이 있다고 보는 경우가 있는데 반해 유죄판결을 받으려면 피해자나 목격자의 일방적인 진술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사람들이 법정에 나와서 위증죄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증언을 해야 합니다. 그 사이의 어느 정도라면 매우 신빙성 있는 진술증거가 있거나 진술증거 이외에 다른 물적 증거가 더 있거나 하는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너무나 다양한 범죄와 이를 증명하는 증거방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복잡한 사건일수록 수사기관은 다양한 증거수집을 통해 범죄의 소명 있음을 주장할 것이고, 반면에 피의자는 그러한 증거들의 신뢰성을 탄핵하며 범죄의 소명 없음을 주장할 것입니다.
아주 간단한 사건에서는 사실관계에 관한 증거가 있으면 바로 범죄의 소명이 있다고 판단받을 수도 있겠지만, 소위 화이트칼라 범죄라고 불리는 혐의이고 금전거래를 수반하는 사건일수록 사실관계에 대한 증거만으로 범죄의 소명이 되었다고 보기는 힘들고 그 사실관계에 따를 때 법리적으로도 유죄가 된다는 판례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기업경영에 있어서 배임죄와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행위 등일 것입니다. 사회의 발전에 따라 워낙 다양한 유형의 사건들이 생기다 보니 특정한 행위가 있다고 해서 바로 유죄로 볼 수 있는지가 불분명한 경우가 더 많아지는 추세이고, 이는 최근 중대재해처벌법위반 사례들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 부분은 사건별 개인별로 조금씩 중요도가 다릅니다. 증거인멸과 관련해서 법원에서 가장 나쁘게 보는 대표적인 행위는 '피의자의 거짓말'이나 '피의자가 시킨 것으로 의심되는 다른 사람의 거짓말'입니다. 따라서 증거의 가치 여부를 불문하고, 수사기관에서 법원에 제출하는 증거 중에 '피의자의 거짓말' 또는 '피의자가 시킨 것으로 의심되는 다른 사람의 거짓말'이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면 왜 그런 사정이 생겼는지에 대해서 오히려 솔직하게 방어권 보장과 연결시켜서 설명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도주우려 부분은 사회적으로 안정된 지위에 있고 가족과의 유대관계가 확실한 피의자에게는 인정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재판 실무상 추후 실형의 선고 가능성이 큰 피의자는 도주를 할 수도 있다는 관념이 잔잔하게 형성되어 있으니 이러한 점을 유의하여 변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밖의 고려사항인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우려'는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므로 직접 구속영장의 발부사유로 삼는 판사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위 요소 중 하나라도 강하게 인정된다면 구속이 될 가능성은 50% 이상 높아진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피의자에게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니 역시 유의하여야 합니다.
문제는 위와 같이 구속사유에 대해서 법조문을 제법 잘 안다고 해서 실제 구속영장실질심사에 대비해서 변론준비를 완벽하게 잘 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제가 변호사로 업무를 하며 법원에서 재판을 할 때와 비교해서 가장 예상과 달랐던 부분이 구속영장실질심사의 준비였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영장 담당 판사들은 수사기관에서 제출하는 증거들을 피의자측에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전제에서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판사들은 대부분 민사, 형사재판의 본안 사건을 많이 담당하면서 경험을 쌓고 그 업무에 익숙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양쪽의 무기는 평등하고, 재판의 자료는 공개되었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변호사로서 영장실질심사를 준비하고 변론을 해보니 정말 '정보의 편재' 현상이 극도로 나타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사 단계에서부터 변론을 수행하던 변호사라면 사건의 내용을 어느 정도 알겠지만(그렇다 하더라도 피의자의 진술이나 압수된 증거들을 짐작하는 정도여서 빙산의 일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 않고 구속영장 청구 후에 변론을 맡게 되는 변호사의 경우에는 말 그대로 피의자 얼굴 한번 보고 몇 시간 대화 나눈 이후에 영장실질심사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구속영장청구서가 있기는 하지만 그 서류의 기재 내용도 천차만별이어서 아주 간단하게 범죄사실만 기재되어 있고 어떠한 증거들이 있는지 가늠하기 힘들 경우가 많아 참으로 어리둥절한 상황이 생기게 됩니다.
지금까지 계속되어온 구속영장 심사 제도의 발전이 우리나라 인권 신장의 역사라고 볼 수 있듯이, 앞으로는 제도적으로 피의자와 변호인이 지금보다 더 많은 수사기록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도의 발전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당장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에게는 그것을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사회에서 '선량한' 시민으로 법을 잘 지키면서 구속영장 청구라는 불상사가 나에게는 닥치지 않기를 바라고, 그 바람은 대부분의 인생에서 실현이 됩니다. 혹시 나의 '선량한' 행위가 누군가의 오해를 받아 수사기관에서 구속영장 청구라는 모험을 감행한다면, 또는 내 주변 누군가가 그러한 시험에 들게 되는 경우라면 무엇보다 변호사의 조력을 적절히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족이나 지인에게 알리기 싫은 마음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제 짧은 생각에는 본인이 떳떳하면 떳떳할수록 주변에도 알려서 무고함에 대한 증명을 함께 해나가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근처에 구속영장실질심사제도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경험이 많은 변호사가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의 일인 것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도와줄 수 있는 변호사를 만난다면 기각될 가능성도 꽤 높다는 점은 꼭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