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서울고등법원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상사∙기업사건 전담재판부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면서 이사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주주대표소송 등 여러 사건을 처리해 보았고, 특히 사외이사에 대해서도 준법감시의무가 인정될 수 있다고 본 첫 판결을 선고하기도 하였습니다. 경영 전문가인 이사의 경영상 의사결정에 대해 비전문가인 법원이 사후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자제한다는 기본 전제 하에, 이사의 주의의무 위반의 책임을 어디까지 인정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관하여 많은 고민을 거듭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이후 법원을 떠나 율촌에 입사한 후에도 법원에서의 경험을 살려 주요 기업 경영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3일 상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습니다. 22대 국회에서 상법 개정법률안이 십여 개 넘게 제안되었고 올해 3월 본회의를 통과하였다가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되었습니다만,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여야 합의(재석 272인 중 찬성 220인, 반대 29인, 기권 23인)로 결국 상법 개정이 이루어지고야 만 것입니다.
이번 상법 개정 과정은 정치권은 물론 이례적으로 학계와 시장에서도 격렬하고 치열한 대립과 논쟁을 거쳤습니다. 그와 같은 대립과 논쟁의 핵심은 바로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하는 상법 제382조의3의 개정 문제였습니다. 개정찬성론은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명시함으로써 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 왜곡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또 그것이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부합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반면, 개정반대론은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규정하면 기업의 경영상 의사결정에 관하여 과도한 소송을 불러와 기업의 경쟁력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고, 이사가 주주에 대하여 충실의무를 부담하는 입법은 해외에서도 찾기 어렵다고 반박하였습니다. 이러한 논쟁에는 정치인과 경제인, 상법 학자는 물론 유명한 주식 유튜버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참전하였습니다.
이처럼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상법 제382조의3은 결국 개정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개정찬성론과 개정반대론을 뛰어넘어 기업의 구체적인 경영상 의사결정에서 상법 제382조의3의 개정 내용을 어떻게 고려하여야 할 것인지에 관하여 살펴야 할 때입니다. 이에 개정 상법 제382조의3은 실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에 관하여 가볍게 제 생각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원래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의 충실의무'라는 제목으로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개정된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의 충실의무 등'이라는 제목으로 제1항에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라 하여 이사가 회사는 물론 주주에 대하여도 충실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명시하였고, 제2항에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여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여야 한다."라는 규정을 신설하였습니다.
먼저 개정된 제382조의3 제1항을 보겠습니다. 본래 회사가 이익을 얻으면 주주도 보유한 주식의 가치 상승이나 배당을 통해 이익을 얻고, 반대로 회사가 손해를 입으면 주주도 손해를 봅니다. 회사는 주주에게 이익을 분배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영리법인이므로, 회사의 이익은 주주의 이익을 본질적인 내용으로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이사가 회사의 이익에 충실하게 직무를 수행할 경우 이는 곧 주주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결국 주주 이익의 보호는 이사가 부담하는 의무의 중요한 부분이 됩니다. 그러면 왜 개정법은 굳이 '주주를 위하여'라 명시한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회사와 주주를 완전히 독립된 권리의무의 주체로 보는 우리 법제 하에서 주주의 이익 또는 손해는 회사의 그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고, 따라서 개정 전 상법 제382조의3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으로 '회사'만 명시한 것은 '주주'의 보호에 미흡하다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개정 전 상법 제382조의3만으로는 이사의 주주이익 보호의무가 아예 인정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회사의 이익은 주주의 이익을 본질적인 내용으로 하므로, 그와 같은 이해가 꼭 맞는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상법 제382조의3 개정찬성론에서 주주이익 침해의 대표적인 사례로 드는 에버랜드 사건을 보겠습니다. 에버랜드 사건은 에버랜드의 이사들이 주주들에게 전환사채 인수 기회를 공평하게 부여하였으나 일부 주주들이 이를 인수하지 않자 그것을 주주 외의 자에게 배정하여 에버랜드에 손해를 가하였다 하여 업무상 배임죄로 재판 받은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서 전환사채를 인수하지 않는 결정은 결국 주주들 스스로 한 것이므로,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에버랜드의 이사들에게 유죄가 선고될 수 있을지는 매우 의문입니다(물론 전환사채 저가 인수 기회를 포기한 에버랜드 주주사의 이사는 회사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사건에서 보듯이 제3자배정 방식의 저가 발행은 상법 개정 전에도 배임죄로 인정되었습니다. 결국 개정된 제382조의3에 의하더라도 에버랜드 사건의 무죄 결론은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만, 저가로 발행된 전환사채나 신주 중 실권된 부분을 합리적 이유 없이 제3자에게 배정하여 다른 주주들의 지분가치가 희석될 경우에는 개정된 상법 제382조의3 제1항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위반을 주장할 여지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한편, 주주의 이익과 손해가 문제되지만 그것이 회사와는 무관한 경우가 있으므로, 그러한 경우에는 개정 상법이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의 합병에서 공정한 합병비율 산정에 관한 이사의 직무수행, 주식 공개매수 상황에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올바른 정보 제공 등과 같은 경우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개정 전 상법 제382조의3에 의한다 하더라도 이사가 주주의 이익을 무시한다면 이는 회사에 대하여 부담하는 선관주의의무 내지 충실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회사의 손해 그 자체는 없으므로 형사상으로 배임죄까지 성립하기는 어렵겠지만, 이사가 합병비율을 부당하게 주주에게 불리하게 정하였다면 이는 주의의무 위반에 해당하여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사는 회사의 합병 과정 전반에 걸쳐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고, 이는 상법 제382조의3의 개정 이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에 신설된 상법 제382조의3 제2항은 어떨까요?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것은 개별 주주가 갖는 하나하나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주 전체의 집단적 이익을 보호한다는 것이고, 또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한다는 것은 주주들 모두를 기계적으로 평등하게 대우한다는 것이 아니라 주주들이 소유한 주식의 수에 따라 비례적으로 균등하게 대우한다는 의미입니다. 개별 주주들의 구체적인 선호와 이해관계는 매우 다양할 수밖에 없고 이를 모두 존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총주주의 이익'이란 대개 '회사의 이익'과 동일한 내용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 '회사의 이익'이라는 개념 자체에 내재된 모호성은 상법 개정으로 새로 생긴 법적 문제도 아닙니다. 이는 결국 종전과 같이 경영판단의 원칙이 적용되어 판단될 영역으로, 충분한 정보를 기초로 선의에 의하여 합리적으로 결정하였다면 특별히 새로운 책임을 야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상법 개정 이후 이사들이 종전보다 배임죄의 위험에 더 노출될까요? 기업인에 대한 배임죄 고소의 남용 가능성은 상법 개정반대론에서 강력하게 주장하던 논거 중 하나였습니다. 즉, 이사가 회사 외에 주주에 대하여도 충실의무를 부담하게 될 경우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위반을 이유로 배임죄로 고소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즉, 이사가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위반을 이유로 형사상 배임죄의 책임을 지려면 먼저 이사가 주주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임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사는 회사의 사무를 처리하는 것일 뿐 주주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지 않고, 주주의 손해가 그 자체로 회사의 손해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이사가 회사의 사무를 처리함에 있어 주주의 이익을 보호할 의무를 위반하였다 하더라도, 형사상 배임죄의 책임까지 부담하게 될 가능성은 쉽게 생각해내기 어렵습니다.
이번 상법 개정의 가장 큰 계기가 되었던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이른바 쪼개기 상장)은 어떨까요? 현시점에서 속단하기 어렵지만 상법 개정으로 별달리 큰 영향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하여 100% 자회사로 만든다는 것은 총주주의 이익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주주들의 형평을 해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물적분할된 100% 자회사를 상장하는 경우, 자회사 이사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자회사 총주주(모회사)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모회사 이사 또한 자회사의 상장에 반대해야만 모회사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에 부합한다고 쉽사리 단정지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물적분할과 자회사 상장을 별개의 행위가 아닌 일체로 진행하되 그 결과 모회사 주식 가치가 하락하여 모회사 주주가 손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는, 다른 자금조달 방법들을 고려하여 어떠한 방법이 모회사 주주 전체의 이익이 가장 부합하는지 합리적인 검토를 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간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규정을 도입하는 상법 개정의 타당성에 관하여 많은 논의가 있어 왔으나, 정작 상법 개정 이후 회사의 경영상 의사결정과 이사의 주의의무 위반이 문제되는 구체적 사안에서 어떠한 변화가 생길 것인지에 관하여는 별다른 검토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제 소견으로는 이번 상법 제382조의3 개정은 회사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주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회사의 속성상 지극히 당연하고 상법 개정 없이도 실현 가능하였던) 원칙을 명문으로 정함으로써 자본시장과 기업, 법원의 인식을 변화시키고자 의도하였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앞으로 구체적인 사안에서 법원의 해석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번 상법 개정 때문에 기업의 경영상 의사결정이 소극적으로 위축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